게임 기획자와 PM은 왜 AI를 써야 할까?

게임 개발은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실제 결과물로 만들기 위한 실행력과 정리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개발 과정에서는 그 아이디어를 문서로 만들고, 팀원들과 공유하고, 일정에 맞게 쪼개고, 구현 중 생기는 이슈를 계속 추적해야 합니다. 기획자는 시스템의 의도를 설명해야 하고, PM은 여러 파트의 진행 상황과 리스크를 파악하고 조정해야 합니다. 회의가 끝나면 결정된 내용을 정리하고, 액션 아이템으로 바꾸고,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게임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하지만, 동시에 많은 시간을 잡아먹습니다. 최근 AI 도구를 사용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AI가 기획자나 PM을 대체한다기보다 반복적인 정리 업무를 줄여서 사람이 더 중요한 판단에 집중할 시간을 만들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게임 개발에는 반복되는 정리 업무가 많다

게임 개발 현장에는 매일 비슷한 종류의 정보가 쌓입니다. 

회의록, 기획 변경 사항, 액션 아이템, 이슈 리스트, 일정 업데이트, QA 피드백, 밸런스 조정 내역, 개발 리스크, 의사결정 히스토리 같은 것들입니다. 

각각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개발 과정에서 큰 혼선이 생깁니다. 

“지난 회의에서 이걸 하기로 했었나?”
“이 이슈는 누가 담당하기로 했지?”
“기획은 바뀌었는데 문서도 업데이트됐나?”
“QA에서 나온 버그는 수정됐나, 아니면 보류됐나?”

이런 질문들이 반복되면 팀 전체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집니다. 결국 기획자와 PM은 단순히 아이디어를 내거나 일정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정리하고 팀이 같은 방향을 보게 만드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AI는 바로 이런 반복적인 정리 업무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AI가 잘하는 일은 판단보다 정리에 가깝다

AI를 처음 업무에 적용하려고 하면, 자주 이런 기대를 하게 됩니다.

“AI가 좋은 기획안을 대신 써줄 수 있지 않을까?”
“AI가 프로젝트 관리를 대신 해줄 수 있지 않을까?”
“AI가 게임 시스템을 알아서 설계해주지 않을까?” 

물론 AI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문서 초안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업무에서 더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정리, 요약, 분류, 변환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일들입니다.

  • 긴 회의록을 핵심 결정사항 및 중요 내용 정리본으로 요약하기
  • 대화 내용을 액션 아이템으로 바꾸기
  • 이슈 목록을 우선순위별로 분류하기
  • 기획 변경 사항을 기획서에 업데이트 하기

이런 일들은 사람이 해도 되지만, 매번 직접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듭니다. 반복될수록 피로도도 커지고, 정작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때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부분에 많은 피로감을 느꼈고, AI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AI는 이런 정리 작업을 빠르게 처리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기획자와 PM은 AI가 정리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중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실제 개발 상황에 맞게 조정하면 됩니다.

기획자에게 AI가 도움이 되는 부분

게임 기획 업무에서 AI가 유용한 순간은 꽤 많습니다. 특히 머릿속에 흩어진 생각을 문서 구조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성장 시스템을 기획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아이디어가 섞여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반복해야 하는지, 어떤 보상을 제공할 것인지, 성장의 목표는 무엇인지, 중간에 어떤 병목이 생길 수 있는지, 과금 요소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신규 유저와 기존 유저의 경험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이 내용을 처음부터 완성된 기획서로 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AI에게 현재 생각을 심플하게 던져주고, 목표, 핵심 루프, 보상 구조, 예상 리스크, 추가 검토 항목으로 나눠달라고 요청하면 초안의 뼈대를 빠르게 잡을 수 있습니다.

 AI가 완성된 정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흩어진 생각을 문서의 형태로 바꾸는 출발점은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기획자는 그 구조를 바탕으로 빠진 부분을 채우고, 실제 게임의 방향성에 맞게 수정하면 됩니다.

이 관점에서 AI는 기획자의 판단을 대신하는 도구라기보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보조에 가깝습니다. 

PM에게 AI가 도움이 되는 부분

PM 업무에서는 AI의 활용 범위가 더 직접적이라고 봅니다.

PM은 매일 많은 정보를 파악해야 합니다. 기획팀의 변경 사항, 아트 리소스 일정, 개발 진행 상황, 서버 이슈, QA 결과, 사업 일정, 라이브 운영 일정 등이 계속 들어옵니다.

문제는 이 정보들이 항상 정리된 형태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회의 내용, 슬랙 메시지, 구두 전달, 이슈 트래커 코멘트, 문서 수정 내역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PM은 이 정보를 모아서 현재 프로젝트의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때 AI는 회의 내용을 결정사항, 액션 아이템, 논의 필요 항목으로 구분하거나, 여러 이슈를 중요도와 긴급도 기준으로 정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특정 기능의 진행 상황을 요약하거나, 지연 위험이 있는 항목을 추려내거나, 주간 보고서 초안을 만드는 데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PM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내용을 직접 타이핑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무엇이 문제이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빠르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AI는 그 판단을 위한 재료를 정리해줄 수 있습니다.

AI를 쓰면 사람이 덜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다

AI 이야기를 할 때 자주 나오는 걱정이 있습니다. 

“AI가 기획자나 PM의 일을 대체하는 것 아닌가?”
“문서 작성도 AI가 하면 사람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면 아직은 기우라고 느껴집니다. AI는 정리를 잘하지만,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특히 게임 개발에서는 숫자나 문서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어떤 기능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도 단순히 중요해 보인다고 먼저 개발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팀 리소스가 충분한지, 다른 시스템과 의존성이 있는지, 유저 경험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이번 빌드 목표와 맞는지 함께 봐야 합니다.

이런 판단은 AI가 대신하기 어렵습니다.(물론 가까운 미래에는 이러한 작업도 더 잘할 수도 있겠죠..) AI가 정리한 내용은 참고 자료일 뿐이고, 최종 결정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합니다.

오히려 반복적인 정리 업무를 AI에게 맡기면 사람은 더 중요한 판단이나 작업에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을 지금 개발하는 것이 맞는지, 이 문제가 정말 유저 경험에 큰 영향을 주는지, 팀이 놓치고 있는 리스크는 무엇인지, 우리가 만들고 싶은 재미와 현재 구현 방향이 일치하는지 같은 질문들입니다.

AI 활용의 핵심은 자동화보다 업무 흐름 정리다

AI를 업무에 도입한다고 하면 거창한 자동화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슬랙과 연동하고, 지라와 연결하고, 노션 데이터베이스를 자동으로 업데이트하고, 회의록을 자동으로 요약하는 식의 그림을 상상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자동화도 가능하고, 잘 만들면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업무 흐름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회의록 자동화를 하고 싶다면 먼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회의록에서 반드시 남겨야 하는 정보는 무엇인지, 결정사항과 논의사항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액션 아이템에는 어떤 정보가 포함되어야 하는지, 담당자와 기한은 어떻게 표시할 것인지, 회의 후 어디에 공유할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이 기준이 없으면 AI가 아무리 요약을 잘해도 실제 업무에는 잘 붙지 않습니다. 결국 AI 자동화의 시작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 팀의 업무가 어떤 흐름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기획자와 PM은 AI를 도입하기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원래도 업무의 구조를 보고, 정보를 정리하고, 팀의 흐름을 맞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복잡한 자동화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업무부터 AI를 적용해보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가장 추천하는 시작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회의록 요약입니다. 회의 내용을 AI에게 넣고 핵심 결정사항, 액션 아이템, 담당자, 기한, 추가 논의 항목, 리스크로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팀에서 반복되는 업무이기 때문에 효과를 체감하기 쉽습니다. 이전에 많게는 1시간씩 걸리던 작업이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둘째, 이슈 목록 정리입니다. QA 피드백이나 이슈 트래커 내용을 중요도, 긴급도, 담당 파트, 확인 필요 사항 기준으로 정리하게 하면 현재 어떤 문제가 우선인지 파악하기 쉬워집니다.

셋째, 기획서 초안 구조화입니다. 처음부터 완성된 문서를 쓰려고 하기보다, 아이디어를 AI에게 전달하고 목표, 핵심 규칙, 유저 플로우, 보상 구조, 예외 상황, 검토 필요 사항으로 나눠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문서의 첫 장벽을 낮출 수 있습니다.

AI는 게임을 더 잘 만들기 위한 도구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 자체가 아닙니다.

기획자와 PM에게 AI가 의미 있는 이유는 반복적인 정리 업무를 줄이고, 더 중요한 판단에 시간을 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게임 개발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무엇을 만들지, 무엇을 줄일지, 어떤 문제를 먼저 해결할지, 어떤 경험을 유저에게 줄지 계속 결정해야 합니다.

AI가 모든 답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흩어진 정보를 정리하고, 놓친 부분을 확인하고, 생각을 문서로 바꾸는 과정에서는 충분히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기획자와 PM이 AI를 써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더 적은 시간으로 더 많은 문서를 만들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결국은 게임을 더 잘 만들기 위한 판단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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